천일 기념

2012. 7. 9. 00:41




간만에 비가 정신없이 내리던 날,
신촌의 한 라멘집에서 저녁을 먹고 학교 도서관에서 각자 과제와 독서를 하다가
우리는 문득 천일을 맞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
최근에 둘 다 관심 갖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세 권을 천일 기념으로 함께 사고
개인적으로 읽고 싶었던 목수정의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도 따로 구매했다.


천일이라는 시간을 걷는 동안 우리는
도서관의 다른 층에서 각자 할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비가 많이 올 땐 우산을 각자 나눠 쓸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바라보는 눈빛과 맞잡은 두 손, 마주 보며 웃는 얼굴은
우산 밖으로 내미는 손처럼 따뜻하다.


서로 맞춰가는 것과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사이에서 여전히 갈팡질팡 중이나
정성껏 부분수리하는 걸 잊지 않는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관계에 대한 비관주의적 상상.
힘써야 할 것은 바꾸기 어려운 습관.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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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15. 23:08


1. 블로그 배경을 바꿔 보고 싶은데 익숙한 것을 버린다는 게 쉽지 않다. 나는 여기 길들어버렸다. 이 틀 안에서 글의 내용을 떠올리고 글의 길이를 가늠한다. 영화 <은교>에서 시인이 말했다. 가구들도 오랜 시간 한 자리에 있으면 거기에 뿌리를 내린단다. 내 글들도 이 틀 안에 뿌리내렸을까. 내 인생의 중요도 순위에서 적어도 50위권 안에는 들지 않을 것 같은 블로그 배경 하나 바꾸기도 이리 어렵니 원.



2. (주)나라인포**에서 나온 맞춤법 검사기를 사용해보면, 종종 맞춤법에 틀리진 않으나 더 좋은 표현이 있는 문구를 알려주곤 한다. 대체로 일본어나 영어 등의 번역 투 표현일 경우가 많은데 '~의', '~도' 같은 조사의 사용이 과하거나 쓸데없는 사동·피동 표현이 나오는 경우도 지적의 대상이 된다.

 그럴 때면 대부분 '아, 이 표현이 문법적으로 더 좋은 거구나.'라며 고치지만, 가끔은 수정 후에 내가 표현하려는 뉘앙스가 묘하게 달라져 고민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이전 글에서 '되도록이면 → 될 수 있으면, 드라마틱한 → 극적인, 독자 입장에서도 → 독자로서도' 같은 것들이다. 전혀 뜻이 다르다고 할 순 없지만 정말 미묘한 차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유로 나는 앞 단어들을 글에 넣어야 한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주로 권장하는 표현으로 바꿔왔는데, 이게 반복되다 보니 슬그머니 반발심이 생기는 것 같다. "흥, 어쨌든 기계 주제(?)에 내가 표현하려는 뉘앙스를 네가 알아?"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이것들도 내 언어 습관인 것 같다. 처음엔 어색해도 더 좋은 표현을 써 나가면서 익숙해지는 게 좋겠지. 앞으로도 계속 조언 구할게. 늘 고마워. 진짜야.



3. 내일은 내 홍채에 구멍을 낸다. 처음에 누군가 무시무시한 말투로 이 얘기를 했을 땐 정말 기겁을 했는데 얼마 후 안과 선생님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니 또 나도 아무렇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수술의 과정인가 보다 한다. 눈 안에 렌즈를 넣는다는 것도 마찬가지. 찌아요우.




Posted by duun


 행복에 관한 과학적인 이론과 실험들을 배우면서 내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행복이 타고난다는 것이었다. 100%는 아니지만 행복의 많은 부분이 선천적인-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성격 기질이고, 성격의 대부분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것은 실은 내게 굉장한 도전이었다. 전부는 아니어도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는 그 선천성이 내 행복을 무섭게 위협했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하지 않은 유전자를 너무나 많이 갖고 있었다. 낮은 외향성, 높은 신경증, 비쾌락주의 등 수업 시간에 나의 기질과 특질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마다 깊은 한숨을 쉬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자신의 행복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래서 더욱더 행복의 선천성에 집착했다. 일단 적을 알아야 적을 물리칠 방법을 궁리할 수 있는 것처럼 대체 나의 어떤 유전자가 행복에 악영향을 끼치는지 알아야 대책을 세울 테니까. 물론 선천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나의 의도나 행동으로 바꾸기 어려운 걸 의미한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행복하지 않을 때 '내가 이런 식으로 상황을 인지해서 지금 이런 기분인 거야'라는 생각이 가능하고, 이는 '행복하지 않음'에서 '우울'로 가는 연결고리를 끊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천성을 아는 것만으로 '행복하지 않음'에서 '행복'으로 껑충 뛸 수는 없다. 적어도 나처럼 행복하지 않은 유전자를 상대적으로 많이 보유한 사람에게는 그렇다. 그래서 나는 선천성을 뛰어넘는 행복의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이렇게 하면 당신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내게 이 책은 바로 내가 찾던 그것이었다. 부제가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붙은 것처럼 저자는 행복의 40%가 우리의 의도, 행동, 연습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는 50%가 유전, 10%가 환경, 그리고 40%가 행동이다. (이 수치가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으로 보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대강 맞는 것 같다. 수업 시간엔 유전의 중요도를 좀 더 높게, 환경의 중요도를 조금 더 낮게 배웠다.)


 지금까지는 40%를 변화시킬 전략의 리스트까지만 읽었다. '몰입 체험 늘리기', '삶의 기쁨 음미하기'와 같은 전략의 취지에는 완벽히 공감하지만, 앞으로 읽을 구체적 실천 방안 부분에서 누구나 아는 뻔하고, 그래서 내게 와 닿지 않는 말들이 쓰여 있을까 봐 살짝 걱정된다. 그래도 이 책은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가 썼다. 자기계발서는 아니지만 자기계발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믿는다. "당신이 자신의 행복 설정 값이나 어떤 환경에 직면할 때마다 소극적이고 허무한 기분에 압도당한다면 지속적이고 진정한 행복은 당신의 손이 닿는 곳에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라." 드라마틱한 효과를 기대하진 말자. 어쩌면 앞으로 읽을 부분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 수 있다. 중요한 건 내게 맞는 몇 가지 전략들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행동으로 옮기는 것. 일단 다시 책을 연다.


  
 
Posted by duun


 쓰고 싶고 남기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그런데 도통 머릿속에서 글로 만들어지질 않아 삼키고만 있었다. 삼키고 삼킨 말들이 뜨거운 열기를 훅훅 낸다. 지금 이 흰 화면 위에 그 태양을 뱉어놓으려는 건 아니다. 아직은 아니다. 그저 입으로 후후 불고 손을 휘휘 저어 열기만이라도 가실 수 있다면. 

 전엔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면 숨 쉬는 지점마다 줄을 바꾸고, 말을 중간에 끊어 여운을 남기고, 번호로 내용을 전환했다. 줄임표에 감정을 담고 접속사 대신 번호를 붙이는 게 더 나를 잘 표현해주고 독자 입장에서도 읽기 편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하고 싶은 말을 온전한 문장과 문단이 아닌 생략과 번호로 손쉽게 대체한 방법이었다. 덧붙여 약간의 허세도 함께. 물론 이런 날탱 마음만 있던 건 아니니까 위와 같은 방법을 전혀 안 쓰겠다는 건 아니고 되도록이면 '제대로 된' 글을 써야겠다는 거다.

 참 별 얘기 아닌데도 모니터 앞에 앉아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만들고 있자니 예의 그 태양이 한 5도쯤 온도가 내려간 것 같다. 책상 앞에는 제주도 하늘에서 바람에 떨고 있는 가느다란 나뭇가지의 사진이 있다. 흔들리면서 가자고, 뿌리는 단단히 박되 가지와 잎사귀는 바람결에 따라 흔들흔들 춤추는 게 건강한 나무라고 떡하니 걸어놓고는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흔들릴까 봐 조마조마해한다. 


 여행지에서의 나처럼 살고 싶다. 그곳에서는 하루가 소중하고 한 시간이 아까워 전날 저녁부터 내일을 어떻게 충만하게 보낼지 연구한다. 목적지에 가고 숙소에 돌아오는 교통편만 확실하면 눈을 뜨고 땅을 밟는 순간부터 '케세라세라, 카르페디엠'이다. 그렇게 내딛는 나의 매 발걸음이 의미가 되고 내 눈에 비치는 거의 모든 것들이 감탄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집을 나서는 것이 힘들지 않고 집에 돌아와서 컴퓨터, TV, 휴대폰이 없어도 심심하지 않다. 잠자리와 짐은 단순할수록 좋다. 하루가 참 길고 또 짧다.

 집에 돌아오니 아빠의 첫 마디가 "그래, 목적 달성은 하고 온 거니?"였다. 아빠에게 반론하려면 수많은 논리와 근거를 며칠씩 찾아야 하는 겁 많은 완벽주의 딸은 그 자리에서 희미한 웃음으로밖에 답할 수 없었지만, 그 어떤 근거를 찾더라도 내 결론은 같다. 여행은, 그냥 가는 겁니다. 목적 같은 건 없어요. 여행의 목적은 바로 '가는 것'이에요, 아빠.



Posted by duun

어떤 밤

2012. 5. 23. 00:45

밖에선 많지도 적지도 않은 비가 내리고

비오는 차도 위를 달리는 자동차가 쏴아아 쏴아아
내는 소리를 듣고 싶은 밤


나의 선택이 무모함인지 간절함인지 알고 싶은
이 밤


자아의 나약함을 어떤 심리학 이론으로 설명해야 하는지

까마득한 어느 봄 밤



 
Posted by duun


그제 올린 드라마 <패션왕> 관련 트윗들.

1. 그래, 저 나이대가 그런 거라고, 내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순간적인 감정에 삶 전체가 흔들리고, 사소한 자극에도 마음이 손바닥 뒤집듯 변할 수 있는 거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이건 아니야 패션왕!!!

2. 개연성 부족한 전개, 무신경한 편집, 과도한 PPL 등을 제치고 내가 제일 괴로운 건 도무지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가 없는 것. 제작진이 보여주고 싶은 어떤 '장면'을 위해 스토리와 인물들이 존재하는 느낌이다.

3. 명장면이란 탄탄한 이야기 흐름과 차근차근 쌓여가는 인물들의 감정 안에서 자연스럽게 폭발력을 갖는 것이라 생각한다. 멋진 장면을 미리 만들어 놓고 다른 걸 꿰어 맞춘다고 마음에 와 닿을 수는 없다.


Posted by duun



내 안의 뭐라도 자꾸 꺼내놓고 싶은, 지금의 나는 아마도 output 상태.

예전에 스승님이 input과 output 상태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외부의 자원을 흡수하여 고요하게 내면을 쌓아가는 시기가 있고, 그것들을 밖으로 표출하며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쏟아내는 시기가 있다고. 두 상태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고 말이다.

지금의 내가 내 안의 갈고 닦은 것들을 터뜨리는 진정한 의미의 output 상태는 아닌 것 같지만(굳이 말하자면 꺼내 놓을 것이 별로 없는 가난한 output 상태랄까) 어쨌든 input 상태도 아닌 것 같다. 분명한 증거가 책을 못 보겠는 것. 보고 싶다! 읽고 싶다! 저 책 내용이 진짜진짜 궁금하다! ....그런데 안 읽힌다. 며칠째 탁자 위에서 가지런히 먼지를 맞고 있다. 


지금 난 무지무지하게 input이고 싶다. 세상의 모든 이론들을 다 삼켜 버리고 싶다. 눈과 뇌를 활짝 열고 모든 지식을 쓸어 담고 싶다. 그런데 마음만 그렇다. 어찌해야 좋을까





Posted by duun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 자주 생각하는 게 나는 참으로 eudaimonia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행복은 순간의 감정보다 삶 전체의 질과 가치가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물론 내리쬐는 봄 햇살이나 친구와의 대화 한 토막으로 순간적인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내게 더욱 충만한 행복감은 삶의 의미와 목적에서 온다. 그것을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늘 균형이다.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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