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비가 정신없이 내리던 날,
신촌의 한 라멘집에서 저녁을 먹고 학교 도서관에서 각자 과제와 독서를 하다가
우리는 문득 천일을 맞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
최근에 둘 다 관심 갖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세 권을 천일 기념으로 함께 사고
개인적으로 읽고 싶었던 목수정의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도 따로 구매했다.
천일이라는 시간을 걷는 동안 우리는
도서관의 다른 층에서 각자 할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비가 많이 올 땐 우산을 각자 나눠 쓸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바라보는 눈빛과 맞잡은 두 손, 마주 보며 웃는 얼굴은
우산 밖으로 내미는 손처럼 따뜻하다.
서로 맞춰가는 것과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사이에서 여전히 갈팡질팡 중이나
정성껏 부분수리하는 걸 잊지 않는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관계에 대한 비관주의적 상상.
힘써야 할 것은 바꾸기 어려운 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