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관한 과학적인 이론과 실험들을 배우면서 내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행복이 타고난다는 것이었다. 100%는 아니지만 행복의 많은 부분이 선천적인-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성격 기질이고, 성격의 대부분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것은 실은 내게 굉장한 도전이었다. 전부는 아니어도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는 그 선천성이 내 행복을 무섭게 위협했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하지 않은 유전자를 너무나 많이 갖고 있었다. 낮은 외향성, 높은 신경증, 비쾌락주의 등 수업 시간에 나의 기질과 특질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마다 깊은 한숨을 쉬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자신의 행복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래서 더욱더 행복의 선천성에 집착했다. 일단 적을 알아야 적을 물리칠 방법을 궁리할 수 있는 것처럼 대체 나의 어떤 유전자가 행복에 악영향을 끼치는지 알아야 대책을 세울 테니까. 물론 선천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나의 의도나 행동으로 바꾸기 어려운 걸 의미한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행복하지 않을 때 '내가 이런 식으로 상황을 인지해서 지금 이런 기분인 거야'라는 생각이 가능하고, 이는 '행복하지 않음'에서 '우울'로 가는 연결고리를 끊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천성을 아는 것만으로 '행복하지 않음'에서 '행복'으로 껑충 뛸 수는 없다. 적어도 나처럼 행복하지 않은 유전자를 상대적으로 많이 보유한 사람에게는 그렇다. 그래서 나는 선천성을 뛰어넘는 행복의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이렇게 하면 당신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내게 이 책은 바로 내가 찾던 그것이었다. 부제가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붙은 것처럼 저자는 행복의 40%가 우리의 의도, 행동, 연습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는 50%가 유전, 10%가 환경, 그리고 40%가 행동이다. (이 수치가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으로 보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대강 맞는 것 같다. 수업 시간엔 유전의 중요도를 좀 더 높게, 환경의 중요도를 조금 더 낮게 배웠다.)


 지금까지는 40%를 변화시킬 전략의 리스트까지만 읽었다. '몰입 체험 늘리기', '삶의 기쁨 음미하기'와 같은 전략의 취지에는 완벽히 공감하지만, 앞으로 읽을 구체적 실천 방안 부분에서 누구나 아는 뻔하고, 그래서 내게 와 닿지 않는 말들이 쓰여 있을까 봐 살짝 걱정된다. 그래도 이 책은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가 썼다. 자기계발서는 아니지만 자기계발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믿는다. "당신이 자신의 행복 설정 값이나 어떤 환경에 직면할 때마다 소극적이고 허무한 기분에 압도당한다면 지속적이고 진정한 행복은 당신의 손이 닿는 곳에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라." 드라마틱한 효과를 기대하진 말자. 어쩌면 앞으로 읽을 부분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 수 있다. 중요한 건 내게 맞는 몇 가지 전략들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행동으로 옮기는 것. 일단 다시 책을 연다.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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