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 일기

2023. 6. 23. 20:39

-사날은 참 긴장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제가요? 저 긴장해요.

-물어보면 긴장된다고 하긴 하는데 먼저 드러내진 않고. 긴장하는 것 같지 않아 보여요.

-아, 그건 감정 마비 때문에 그래요.

 

같이 조금 웃다가

-원래 좀 덤덤한 편이긴 해요.

덧붙인다.

 

 

그렇지만 긴장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긴장해서 무대를 망쳐버렸던 적이 있거든요.

 

심장이 마구 뛸 때는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께를 지그시 눌러요.

그러고는 손바닥에 전해지는 심장 박동을 느껴요.

쿠궁 쿠궁 쿠궁 쿠궁

거기에 집중하다보면 서서히,

가라앉을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진 않아요.

그래도 그럴 때 대응하는 나만의 의식이 있다는 점에서

조금 안도하게 돼요.

 

그때는, 내가 망쳐버린 그때에는

손을 올려놓는 나만의 의식이 없었어요.

내가 긴장하는지도 몰랐어요 정말 아무렇지 않았거든요 아무런 생각도 없었어요 연습을 많이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같은 생각도 안 했어요 올라가기 직전에 공연 내용을 바꿨고 그래서 바꾼 부분에 대한 연습이 부족했다는 거는 아주 나중에서야 떠올렸어요 무대에 올랐을 때 사람이 많다, 같은 생각도 안 했어요 그냥 했고 맞지 않는 게 귀에 들렸고 그냥 멈추었을 뿐이에요

 

 

그러네. 나는 지금 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새롭게 해석하는 순간이다.

 

사실 긴장해서 망쳐버린 게 아니었다.

긴장해서 멈춘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게 망쳐버린 일이라는 걸 내려와서야 알았다.

그냥 몰랐을 뿐이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그건 실패를 뜻한다는 걸.

그저 모른 채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 일의 본질은 긴장이 아니라

내가 모른다는 걸 들킨 일

내가 실수한 걸 들킨 일

모두 앞에서 적나라하게 실패한 일

그것이다.

모두에게 들킨 낯 뜨거운 실패를 마주하는 일.

 

그래서 잊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실패를 조심스럽게 간직하니까.

상처를 끌어안은 채 회복할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아직도 드럼을 치다가 멈칫거리는 순간에

흡, 하고 놀라버린다.

이러면 안 돼. 절대로 안 되는 일이야.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건 나의 실패였어.

나는 실패할 수 있지.

 

 

처음으로

축축하게 묻혀있던 그 일에 햇볕을 쬐어주고

공기를 통하게 해주는 기분이다.

 

 

나, 긴장 안 하는 사람 맞나 봐.

덤덤한 사람 맞나 봐.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뛸 때는

긴장될 때가 아니라

화가 날 때도 아니라

무서울 때.

비난 받을 때, 실패가 드러날 때, 그리하여 나의 수치심이 나를 부를 때.

 

 

Posted by duun

6/9 일기

2023. 6. 9. 20:27

진로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아직도 진로 고민을 해?

누군가 나를 놀려대던 말이 웃겨서 기억해놓았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진로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서 진로심리학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필연. 때로 세상은 우연으로 가득차서 우연으로만 돌아가는 것 같지만

이렇게 가만 앉아서 생각하면 필연이 꽤 있다.

파트너가 테니스에 빠져서 나를 불만스럽게 만들 정도로 내게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줄은 (것이 아니라고 그는 항변하지만) 지금 이전에

내가 그에게 너를 드러내라고, 느껴지는 것을 느끼라고, 너의 선호와 취향과 호불호와 가치관을 나에게 꺼내달라고,

열과 성을 다해 그의 자아를 끌어낸 시간이 있다.

"나는 다 좋아요"에서 "싫어!"로 바뀐 것은 때로 몹시 아쉽지만.

그러므로 그가 좋아하는 것에 미쳐버린 건 "나는 다 좋아요"에서 "좋아!!!!!!!!!!!"가 된 것이고 이것은 필연.

"당신이 나를 안 만났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나의 단골 질문이다.

"아마 지금 이렇게 테니스를 치고 있진 않았겠죠."

 

나는 삶에 필연이 보석처럼 콕콕 박힌 게 좋다.

내가 나의 삶을 만들었다는 뜻 같아서. (통제욕 충족)

우연을 가져와서 우연에 반응하고 우연을 다루는 것도 물론 삶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영역이고

그래서 우연도 결국에는 필연의 영역으로 들어와버려서

우연과 필연이 구분할 수 없이 어지럽게 뒤섞인 게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진로 고민을 박터지게 했던 사람이라 진로심리학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내가 나를 알아준 것만 같아서 내심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국문학과를 간, 국문학을 사랑한 내 친구에게 느꼈던 것처럼.

스스로를 알아주고 스스로에게 맞는 선택을 내려주는 사람이라는 자긍심.

 

하지만 이런 선택이 내 삶에 많지는 않고

나보다 세상을 알아주는 선택을 해왔던 경험들 때문에

나는 나의 선택에 그리 자신이 없다.

내가 원하는 것과 세상이 원하는 것이 하도 끈끈하게 달라붙어있어

자꾸만 '하면 하겠지', '못할 건 없잖아'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미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만으로 그건 세상이 원하는, 그러니까 세상의 욕망을 욕망하는 선택이라는 뜻 아닐까?

세상의 욕망을 욕망할 수 있다.

세상의 욕망을 욕망하는 게 나의 욕망일 수 있다.

다만 그간 내 삶의 경험치로 쌓은 나라는 사람의 지도에 써진 하나의 특성,

나라는 사람은 세상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만으로는 잘 움직이지 않고 기능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게 뭘까?

평생 이 질문을 품고 살게 될 것 같다.

나라는 지도는 자주 수정이 필요하니까. 사월날씨처럼 변덕스럽게.

 

오늘 이 글을 시작한 이유는 지금 하고 있는 진로 고민을 쓰려던 건데

딴 얘기만 잔뜩 했다.

 

 

 

 

Posted by duun

6/2 일기

2023. 6. 2. 19:59

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건 책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내 방에 꼭 알맞은 깔끔하고 앙증맞은 하얀 책상이 있어야 그 위에서 나의 핑크 노트북을 열 수 있고 그제야 일기를 쓸 수 있을 거라고. 책상 없이는 일기를 쓸 마음이 안 생긴다고.

며칠째 트위터며 당근이며 유튜브에 책상, 최화정 책상, 빈티지 책상, 같은 검색어를 쳐 넣고 있다. 마음에 드는 것은 비싸고 눈을 낮춰볼까 해서 찾아도 여전히 비싸다. 그러면서 책상을 보겠다며 성수에 사무엘스몰즈, 오드플랫 알트를 찾은 건 무슨 배짱일까? 아무 배짱 아니다. 그저 현실 감각이 조금 떨어질 뿐. 조금은 붕 뜬 채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건 성실하고 꼼꼼한 나와 한 몸에 있는 역시 나의 자아다.

사무엘스몰즈에는 내 방에 꼭 알맞은 깔끔하고 앙증맞은 하얀 책상이 있었다. 정사각형 모양의 하얗고 단단한 상판을 굵고 반짝이는 크롬 다리가 받치고 있는데 다리가 상판의 각 모서리까지 올라와있는 것이 이 책상의 특징이다. 언뜻 보면 별 거 없고 또 언뜻 보면 찰나의 세련됨이 스쳐서 모서리에 조그맣게 붙은 마스킹 테이프 위 1,100,000이라는 숫자가 언뜻 나의 현실 감각을 가져간다.

이제 이 책상은 기준이 된다. 인스타의 사이다빈티지에서 무척이나 견고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원목 테이블을 발견했는데 98만원인 게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같은 값이면 훨씬 고급스럽고 전통 있고(있는지 모름) 무엇보다 원목인 이걸 사는 게 맞는 거 아니야? 벽에 붙이는 선반 시스템에 책상 하나가 붙어있는 모양새는 내가 아주 원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 또한 가격이 100만원 안팎이라면 나는 또 혼란에 빠지고 만다. 책상에 플러스 선반 선반 선반 서랍장이 붙은 이것이 같은 값이면 훨씬 더 실용적인 거 아닐까?

백십 만원이라는 가격에 온리 내 방에 꼭 알맞은 깔끔하고 앙증맞은 하얀 책상을 사는 게 정말 맞는 일인지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맞고 틀리고가 어딨겠는가. 그저 내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될 일이고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안 사는 게, 아니 못 사는 게? 맞는 일일 뿐. 그럼에도 자꾸 그 책상을 떠올리는 건 역시 현실 감각이 조금 부족한 탓이다. 일기를 쓰니 이렇게 명료한 것을. 역시 일기를 쓸 책상이 필요하겠어. 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 이 책상에서 물론 일기를 쓰는 중이지만.

 

진로 고민을 하는 나에게 누군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법에 관한 책을 추천해줬다. 예스24에 따르면 그 책의 핵심은 잘 하는 일을 찾으라는 것 같은데(대강 훑은 거라 아닐 수 있음) 잘 하는 일을 찾는 건 참 어렵다. 그건 상대평가니까. 내가 숨을 잘 쉰다고 해도 세상 사람 모두가 숨을 잘 쉬는 한, 그건 잘 하는 거라 할 수 없다. 사뭇을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아주 조그마한 조각이라도 내가 잘 하는 영역이 있다면 뭘까? 하는 질문에 파트너도 나도 공간 꾸미기를 꼽았다. 그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칭찬 받은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인정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그것을 잘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여서 나에게 글 좋다고, 계속 쓰자고, 계속 썼으면 좋겠다고 해준 나의 친구와 파트너가 없었다면 나는 나의 블로그 밖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인정받을 만한 것, 인정받았던 것, 남들보다 잘 하는 일을 떠올리려 애쓰다 보면 나는 왠지 금세 지치고 만다. 수치심을 가진 사람에게 남들보다 잘 하는 것을 떠올리기란 객관적인 숫자 아니고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담. 예전부터 친구들은 내게 상담을 요청해왔다. 나와 이야기하면 머리가 정리된다고 했고,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들을 뿐이고 내가 궁금한 걸 물어보는 것 뿐이라서 늘 조금쯤 의아했지만 그 말들이 듣기 좋아서 가만히 있었다. 아니다. 듣기 싫을 때도 있었다. "나 요새 머리를 정리해야 해서 너랑 이야기 해야 돼. 네가 필요해." 하는 말은 싫었다. 아마 상대가 내 이야기를 들을 마음은 별로 없어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다. 그 전에 내가 그에게 내 이야기를 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 전에, 그가 남자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친구와 이야기 나누는 게 즐겁고 나의 집중력이 그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깨달음을 가져오는 건 내가 그에게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담자와 마주 앉으면 나는 어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아내야 한다는 조급함에 헐떡이게 되었다.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해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었다. 나는 잘 기다리지 못한다. 돈을 냈는데 50분 동안 뭔가 얻어가는 게 없다면 끝장이 나는 것이다. 그건 내가 상담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의 태도라서 몇 번 해보다 말아버렸다.

 

홍진경 유튜브에 엄정화가 나왔는데 그전에 최화정 편을 너무 재밌게 봐서(최화정이 입고 먹고 쓰는 모든 것, 하다못해 잠옷까지 다 갖고 싶었다. 가장 갖고 싶던 건 독특한 다리의 하얀 책상, 아니, 서울숲의 집.) 엄정화 편도 고민 없이 눌렀다. 책상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서재를 눈여겨 보았다. 임스인가, 의자가 예뻐 보였고 책상 다리가 크롬인 게 좋았다. 책장 한 귀퉁이에 트로피가 쌓여있었는데 연기자로서 받은 것두 개를 소개했고 나머지는 모두 가수로 받은 것들이었다. 본인을 배우로 잘 봐주지 않았다는 말에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어떤 것들이야 대체! 정화 언니가 연기하는 걸 보고도 그래? 그 유동근이 기억 잃은 채로 사랑에 빠져서 나중에 두 번째 부인이 되는 드라마에서 눈물 줄줄 만드는 걸로 시작해서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그 나이대, 그 상황의 여자의 대인관계에서의 입술 떨림까지 연기해내는 사람이야 이거 왜 이래?

엄정화 언니가 말했다. 늘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어. 말을 하고 봐야 하나 봐.

그런 의미에서 언니, 나도 마당 있는 집에서, 파트너는 1층 나는 2층에서 각자의 부엌과 화장실과 옷방을 갖고 살고 싶어요.

Posted by duun

매일이 生日인 걸 몰랐네. 살아있는 하루, 살아있는 순간, 살아있는 지금을 축하해.

2023년이 나에게 있으리라는 사실이 언젠가의 과거에는 까마득했고 상상되지 않았지.

나에게 이런저런 '완벽'과 '정상'을 요구하는 양육자에게

내가 살아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악으로 소리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직도 조금은 남은 걸 보면

나에게 사는 건 여전히 버겁고 적성에 안 맞는 일 같지만

그럼에도 살아내 주어서, 매일을 넘기는 게 때로 고되도

여전히 살아있어서, 장하다고 어깨를 두드려 줄게.

그리고 나와의 파티를 열자.

살아있음을 축복하는 파티를.

살아가는 것에 나만의 의미를 찾아나가자.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일을 만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고

그게 어떤 때는 맞지 않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나에 대한 지도를 그려나간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있으니 즐길 수 있는 순간을 믿어보자.

축하해, 살아있음을. 지금 이 순간을.

Posted by duun

5/1 일기

2023. 5. 1. 17:30

지금 하고 싶은 건 강릉행 기차를 잡아 타고 창가쪽 좌석에 앉아 책을 펼쳐드는 일이다. 기차는 한산하고 실내는 적당한 온도로 유지된다. 해가 밝아 조명이 없어도 책 속 글자를 읽을 수 있다. 가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휴대폰을 열어 독서 중 떠오르는 단상을 짧게 메모한다. 일상적인 혹은 일적인 메시지가 오더라도 읽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지킬 자신은 없다. 다행히 약한 자신을 지켜주듯 휴대폰은 울리지 않는다. 기차에서 내릴 때가 다가오면 이제사 책에 집중 좀 할랬는데, 하며 아쉽게 책을 덮는데 그러면 기차 안의 시간을 마지막에 가서야 진정 귀하게 느낀다. 

강릉역을 나서면 낯선 풍경과 또 조금은 비슷비슷한 지방의 기차역 앞 택시 정류장, 국숫집, 모텔 같은 간판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어디로 발을 떼볼까 이제서 궁리를 시작한다. 발걸음은 자연히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여 시내냐 바닷가냐 나른하게 고민하는 눈으로 버스 안내판을 훑는다. 그러다 먼저 오는 버스를 그저 잡아 타고 시내로든 바다로든 향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카페든 음식점이든 해변이든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미 여행은 진행 중이고 그속에 무슨 장소를 채워넣든 나는 이미 많은 걸 달성했고 여행이라는 것에 깊이 빠진 상태다. 그저 그 순간을 내 마음이 순수하게 느끼고 있기를 바랄 뿐. 전에 왔던 그리운 풍경을 애써 재현할 필요도 없고 그리운 추억을 애써 곱씹을 필요도 없다. 

 

자유로운 하루가 주어졌다. 같이 사는 사람이 나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도 아닌데 그가 집을 비웠다는 사실에 나는 자유를 얻은 마냥 구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이게 자유의 감각이라면, 그가 있는 일상에서도 꼭 움켜쥐어야지. 하지만 매일 같이 강릉행 기차를 타고 싶어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피곤할 것 같다. 그럼에도 이 감각을 일깨우는 일은 아주 소중한데, 나는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았고 강릉행 기차를 타고 싶다면 언제든 탈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점에서 그렇다.

 

자유가 주어진 오늘, 내가 강릉행 기차를 타지 않은 건 피곤해서다. 기차를 타러 가려면 타야 하는 버스와 지하철 등등의 생각에, 기차에서 내려 두리번거릴 때 햇빛이 눈을 찌를 것이고, 갈 길을 찾는 내 발에는 불편한 운동화가 달려있을 것이고, 가게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 거기 앉아있는 사람들 중 혼자는 나뿐이라 집중이 안 될 것이고, 바닷가에 갔다가도 금방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가 휘날려 피곤해질 것을 다른 좋은 순간들보다 먼저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꾸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왤까? 이유는 알려 하지 않겠다. 알아봤자 해결할 수 없는 이유일 것 같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해봐야겠다. 치우친 예측을 지울 수 있는 건 실제 경험 밖에 없다. 여행이 좋다면 당연히 해결이고 여행이 나쁘다 해도 나의 편견과 아주 다른 나쁨일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예측은 폐기될 것이다. 물론 경험이 나쁘다면 또다른 편견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건 또 그때 가서 해결해야지 뭐. 

Posted by duun

테라로사 2층에 앉아 있으면 편안해진다. 그곳은 층고가 높고 까맣다. 까만 철제책상은 사시사철 냉랭해서 맨살로는 디딜 수 없는데 굳이 테이블을 철제로 만든 건 거기가 포스코 건물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일층에서 주문을 하고 이층으로 올라오면 정가운데에 스무 명쯤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있고 벽면의 통유리창을 따라 독립된 테이블이 정렬해있다. 벽면에 붙어있는 테이블은 4인용이지만 대부분 홀로 앉아 노트북을 앞에 두고 자리를 차지하는 중이다. 다들 오래 앉아 자기 작업을 하고 자리는 언제나 넉넉하고 직원은 일층에 있어 눈치 보일 일도 없다. 옆이나 앞의 사람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테이블마다 콘센트가 비치되어 있어 빈자리라도 생기면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 바람처럼 달려오는 인기 자리들. 그곳에 한번 앉으면 종일, 테이블 위에 컵 하나만 놓여있으면 나는 정당하게 이용하는 사람이 되어 마감 전까지라면 언제까지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존재다. 처음으로 한강을 따라 달린 날, 이 땅을 밟고 있다는 감각이 내가 이곳에 속해있다는 증거 같아 벅찼었다. 딛는 걸음마다 마치 땅따먹기처럼 영역을 넓혀 가는 기분, 이곳에 당당히 존재하고 있다는 기분. 그것이 절실히 필요했고 따라서 나는 고양되었다. 경기도로 이사한 후 사방이 공사 중인 흙먼지 이는 곳에서 밖으로 드나드는 버스 단 한 대에 의존하거나 남편의 스케줄에 종속되어야만 집을 나설 수 있는 고립감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지금이야 고립감과 무력감보다 왕복 만이천 원의 택시비가 낫겠다 판단하여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택시를 이용하지만 택시비를 낭비한다는 죄책감은 꽤 큰 것이어서 그리 마음먹기까지 고립감을 꽤 오래 견뎠다. 물리적인 거리의 이유만이 아니라 지금 일인분의 경제활동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이 사회에 소속되지 못했다고 여기는 감각에 일조한다. 이런 삶도 있고 이런 시기도 있겠지만 나는 자꾸 자리를 찾아 서성인다. 테라로사에서는 그것을 오천 원의 얼그레이 차 한 잔으로 살 수 있다. 아침 열 시부터 밤 아홉 시까지 그곳은 이 땅에서 나의 정당한 자리가 되어준다. 나는 마음 놓고 창밖을 바라본다.

Posted by duun

요즘은 점심을 현대백화점에서 먹는다. 거기 지하에는 맛있는 것들이 많고 또 혼자 먹는 사람들이 많다. 다들 휴대폰을 앞에 세워놓고 먹는다. 조명은 고급스럽게 노오랗고 맛있는 것들이 보기 좋게 늘어서있는 곳. 깔끔하고 쾌적하다. 나는 주로 푸드코트를 이용한다. 그곳이야말로 아무 눈치 볼 게 없다. 요리하는 사람 앞에 앉아 밥 먹는 걸 불편해하는 나에게 최적의 장소. 더구나 코로나 때문에 칸막이를 쳐놓아서 프라이버시는 더욱 강화되었다. 나는 에어팟을 껴고 팟캐스트를 들으며 밥을 먹는다. 가격은 결코 싸지 않지만 만 원 아래로만 먹는 걸 내 나름의 규칙으로 삼았다. 그러면 이 근처에서는 선방이다. 오므라이스 팔천오백원, 까르보나라 구천원, 치즈 오븐 스파게티 구천오백원. 오늘 점심은 어디에서 먹을까 생각하다가 현대백화점을 떠올리고는 조금 흐뭇해지는 걸 느꼈다. 나, 현백을 좋아하나 봐? 그래서 현대백화점 주식을 한 주 샀다. 오늘 아침에 샀는데 벌써 칠백원이 떨어졌다. 근데 현백 좋아해도 되나? 요새는 자본이든 젠더든 암튼 뭔가 강력한 힘의 뭔가가 껴있으면 좀 불안하다. 마음놓고 좋아해도 되는지, 내가 모르는 뭔가 구린 게 언젠가 내 뒤통수를 칠 것만 같다. 그래서 한 발자국 떨어진 느낌으로 좋아할랑말랑 마음을 통제한다. 더욱 미지근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암튼 요새는 내가 뭘 좋아한다고 깨달으면 주식을 산다. 단순하고 초보적이다. 뭐든 재밌게 하고 싶어. 이렇게라도 관심 가지면 좋지. 그러고보면 현대백화점은 내가 좋아할 만한 곳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의 부자 큰이모가 제일 좋아하는 백화점. 이모는 롯데백화점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백화점이라고는 잠실 롯데만 가는 엄마를 코엑스 현백으로 매번 불러내는 이모다. 나의 취향을 가장 먼저 발견해준 사람도 이모였다. 이모가 하는 음식점에 가면 항상 내게만 고급 냅킨을 깔고 그 위에 수저를 올려주었다. 미리 세팅된 상에서 내 자리가 어딘지 언제나 알 수 있었다. 미리 준비해놓지 못한 날에는 어머 사날이는 이거 깔아줘야 돼 하며 요란스럽게 나를 특별대우 해주는 이모한테 나는 괜히 민망스러워 아, 아닌데, 하고 말끝을 흐리곤 했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하나? 근데 이모가 깔아주는 냅킨이 싫지 않았다. 유별난 사람이 되는 건 싫었지만 하얗고 두툼한 냅킨을 착 펴서 무릎에 올려놓고 식사하는 건 좋았다. 그러니까 내 취향이라는 건 뭐랄까 풍족한 귀족의 톤앤매너 같은 걸 동경하는 것이다. 화려하고 치렁치렁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날, 평소에도 늘 입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서양 중세시대 귀족풍의 복식을 좋아한다. 커다란 상에 촛불을 켜놓고 멀찍이 떨어져 앉아 개인 식기를 사용하며 우아하게 포크를 사용하는 걸 꿈꾸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위아래 세트로 파자마를 입고 나이트 가운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집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나보다. 집에서도 호텔처럼 커다란 배스 타올을 쓰고 손바닥만한 핸드 타올을 쓰나보다. 

Posted by duun

몰입의 시간

2020. 10. 28. 11:20

몰입하는 시간이 행복이라고

a가 이야기했다

그치 칙센트미하이가 괜히 유명한 게 아니지

그의 말에 백번 동의하면서

부러워졌다

몸으로 깨우친 사람의 말이라서

당신 삶에 바로 적용되겠구나 싶어서

 

나의 몰입의 시간은 

반짝이는 황금 같은 시간은 언젤까

당신과의 대화

그리고

함께 시를 읽던 순간

그처럼 가슴이 뛰었던 때가

근래 있었나

 

바닷가 파라솔 아래 앉아

뜨거운 바람을 맞으며

시를 읽었다

개같은 가을이 쳐들어오는 시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묻는 시

환상 같은 시간

환상 같은 모래사장

환상 같은 여름바람

 

너무 좋아 이것 봐 여기 좀 읽어 봐

나눌 수 있는 그와 함께

이 노래가 어울릴 것 같아

그가 음악을 틀어줬다

가슴이 쿵쿵쿵 뛴다

몸이 뜨거워진다

상기된 얼굴이 웃는다

사랑 말고

이렇게 날 흥분하게 한 건 처음이잖아

 

내가 뭘 입고 있는지 중요하지 않아

머리 가르마가 잘 타져 있는지 중요치 않아

얇고 가느다란 책

그 안의 글자들에

빠져버린다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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