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순간이 영원하지 않아도
그 순간의 반짝임이 온 인생을 밝혀준다

그러니 너무 슬퍼 말자
내가 할 일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꾹꾹 눌러담는 것



Posted by duun

스몰톡

2012. 4. 25. 13:43


1. 카톡을 탈퇴했다.
대단한 이유는 없다. 심심하면 카톡 리스트 스크롤 하며 사진 (훔쳐)보고 있는 것도 스토커돋는 것 같고, 단 한 장의 사진과 글귀만으로 근황 추측하며 내 멋대로 그의 삶 상상하는 것도 딱히 정신건강에 좋은 것 같지 않고, 무엇보다 그러고 있는 내 시간이 아까워서.

그렇더라도 연락할 사람은 다 한다는 생각에. (뭐, 핵심인물은 틱톡에 다 있기도 하고)


2. 의자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키보드 자판을 뚜드리다가 답답한 듯 자리를 박차고 나가 집안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생각에 골똘히 잠기기도 하고 멍하니 누워있기도 하고 그러다가 퍼뜩 미친 듯이 모니터 앞으로 달려와 두두두두 글을 이어나가는 작가놀이(?) 했다. 며칠 동안.

그리고 궁극적으로 뭐 하고 싶으냐는 쌤의 물음에 망설이다 '행복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낯뜨거운 말을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도 민망했는지 '라는 막연한(으흐흐 웃으면서) 생각을 하고 있어요...' 


3. 이어서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쌤 왈 "엄마한테?"


4. 지금은 완전완전 웃긴 개그 코드인데, 나는 진짜 왕 웃기고 좋은데, 수업시간에도 이런 애드립들에 빵 터지곤 했는데,
나중에 선생님 제자가 되고 나면 달라질까, 툭 뱉는 말이 날 콕콕 찌르려나, 그래도 난 기본적으로 쌤을 좋아하니까! 라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상처가 안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일 년, 아니 몇십 년을 겪더라도 그런 건 적응될 수가 없잖아..!

*. 이미 된 것처럼 말한다 이런 설레발 좋지 않은데 


5. 얼마 동안 TV를 끊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서도 나도 모르게...는 절대 아니고, 안 그러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으로 TV를 켜곤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런 게 바로 중독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보고 싶은 예능을 찾아보고, 기다리던 드라마를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재생시키는 그 순간이 아니라, 그냥 TV를 켜고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순간적으로 재밌는 프로그램들을 잔뜩 보고 나서 몇 시간이 흐른 후 생각해보면 뭘 봤는지 기억이 안 나는 그런 TV 시청에 중독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엔 스트레스를 푸는 좋은 방법이었으나 지금은 무의미한 시간 낭비가 되어 버렸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쨌든 TV를 끊는다. 시작은 데드라인이 있었지만 계속 이어 나가봐야겠다. 앞으로 드라마와 예능은 보되, TV를 보진 않겠다.


6. 성실함의 표본을 보여주는 '월간 윤종신'처럼, 한 달에 하나씩 제대로 된 '글'을 내려고 노력해봐야지.


Posted by duun


석촌호수 빠르게 걷기 운동한 지 어제로 6일째. 횟수는 4번 달성.
꾸준히 '하고' 또 '할' 나에게 보상을 주자.

10번 달성하면 예쁜 트레이닝복?
은 비싸니까 운동할 때 입을 치마 레깅스 정도.

30번 달성하면 트레이닝복?
근데 이때쯤엔 여름이라 특별히 트레이닝복 필요 없을 듯
그럼, 예쁜 운동화? (보상이 너무 큰가)

두둥! 100번 달성하면
당장 운동하러 달려나가고 싶을 핏이 예쁜 분홍색 트레이닝복?
은 또 좀 보상이 작은 거 같은데 흠
100번이면 4-5개월쯤 꾸준히 한 거고 그건 운동을 몸에 습관화시켰다는 건데
이런 참으로 바람직한 일에 충분한 보상은 아니지 않을까?

..나 너무 잿밥에만 관심 있나 (잠깐)
그래도 스스로에게 동기부여 하는 건 좋은 거니까!
근데 동기부여 항목이 너무 물질적 소비 쪽이네, 물론 이런 게 쉽고 분명하게 와 닿긴 하지만
난 이런 것에만 동기부여 되는 사람이 아냐
경험적 구매를 생각해보자. 음.. 운동 100회 달성 기념 제주도 여행 정도?

라는 생각을 하며 도도도도 석촌호수 걷는 중.



+
석촌호수 벚꽃들아 이제 그만 초록 이파리들에게 자리를 넘겨줘도 좋겠어
너희의 아름다움에 홀려 너도나도 손 붙잡고 밤 공기 마시러 나오는구나
평온하고 맑은 호숫가가 그리워

 
Posted by duun

 
 당시의 나는 꽤 오랫동안 식욕을 잃었다. 원래도 식욕이 왕성한 편은 아니지만 유난히 밥이 안 넘어가고 입이 까슬까슬한 기분이었다. 그 좋아하던 집밥을 배고픔에 억지로 밀어넣곤 했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속이 더부룩한 그런 시절이었다.

 게다가 잠을 자고 나도 개운치가 않았다. 어느 날은 피곤에 겨워 밤 11시에 쓰러져 자고, 또 어느 날은 내 인생 어디로 가는 건가 오늘 자는 의미도 내일 일어나는 의미도 아 내게는 의미없다 하며 끝없는 자학과 비관으로(이러면서 하는 일은 대부분 드라마 보기) 새벽 4시에 자기도 했지만, 일어나는 시간은 언제나 같았다. 아침 8시 20분(±10분). 지금 와 생각하면 엄마가 나가시기 전에 아침밥을 얻어 먹으려는 본능(!)과 나 백수라고 퍼져 지내는 거 아니야 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무의식의 작용이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언제 자도 같은 시간에 벌떡 일어나는 기현상을 겪으며 동시에 언제 자든 가뿐히 일어나는 법이 없었고 아침밥 먹고 혼자 있는 집에서 또다시 무거운 낮잠으로 오전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때는 자도자도 머리가 아팠고 그럴수록 나는 더욱 침대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Posted by duun


 내용에 관계없이 누군가의 진심을 담은 욕구 표출은 마음에 와 닿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역시 진심의 힘이 강한 것일까. 말의 형식은 단순하고 담백할수록 좋다. 요란한 미사여구나 완곡한 표현 없이 상대의 '날것의 마음'을 듣게 되면 일순간 멍- 해지고 그 말은 내 심장에 콕 박힌다.

 지금껏 내게 와 박힌 날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엄마의 "나는 지금까지 너희들한테 친구 같았다고 생각했는데." 일상의 고민이나 순간의 생각, 느낌 등을 필터 조금 덜 거치고 스스럼없이 얘기해도 나의 본질에 대해 쉽게 평가절하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가장 편한 친구 같은 엄마도 엄마 나름의 노력이 있었던 거다. 엄마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왔는데 엄마가 당신이 추구하는 엄마상을 위해 애써왔구나 싶었다. 처음으로 엄마라는 '사람'의 맨얼굴을 대한 기분이었다. 그 후로 나는 전보다 더 엄마를 친구로 생각하려고 한다. 나도 엄마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관계가 친구 사이라고 생각한다. 뭔지 모를 책임 의식을 갖게 되는 선배 자리도 부담스럽고 '공손 의식'을 가져야 할 것 같은 후배 자리도 불편하다. 영화 <...ing>의 민아처럼 나도 엄마를 "명자"라고 불러보고 싶다. 그럼 우리 관계가 한 단계 탈바꿈될지도.

 다음 날것은 연인의 "난 어디서든 당신과 손잡고 다정하게 있고 싶어요." 동아리 멤버에서 애인으로 그가 위치 변경한 지 얼마 안 된 동아리 모임 날, 난 공적인 자리에서 그와 사적인 관계로 함께 있는 게 영 적응이 안 됐다. 아직 둘만의 관계도 온전히 편치 않은데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커플'이라는 시선을 받고 있는 게 너무 어색하고 민망했다. 그때 내가 택한 (멍청한) 방법은 옆자리의 그를 등지고 앉아 동아리 멤버 역할에만 충실하기. 여느 때와 다름없으려고 (어쩔 수 없이 그를 의식하지만) 노력하면서 회의하고 사람들하고 얘기한 후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틈에 그에게 슬며시 다가가 미안해하니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저 말을 하는 것이다. 분명하고 심플한 욕구 표현에 그의 '다정'은 날 무장 해제시켰다. 그 이후론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그를 혼자 내버려 두는 일은 없다(혼자 '있는' 것 말고). 당장 저 날의 모임에서부터 난 바뀌었으니 역시 날것의 진심은 강하달까.

 상대의 맨얼굴을 대하면 나도 모르게 무장 해제되고 어찌 보면 별것 아닌 말이 날 변화시킨다. 상대에게 거절당하지 않으려고, 나를 더 (멋)있어 보이게 하려고 날것을 요리/조리하는 데 익숙한 내게 이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내 마음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투명하게 표현하는 일이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좋은 방법이겠다는 단순한 결론을 얻는다. 가끔은 포장지를 걷어내고 투명하고 담백하게 나를 표현해보면 어떨까, "나는 당신과 이것을 하고 싶어요."라고

 

Posted by duun

 오늘은 영어학원에 안 가고 꾀를 부렸다. 쉬지 않고 꾸준히가 힘든 사람인가 생각했지만 그건 좀 슬프니 안 그렇다고 하기로 했다. 그냥 휴식이 좀 필요한 거라고. 그러면서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마음이 불편해서. 참 비효율적이다. 우는 어제 나를 포근히 안아주고 찜질방으로 갔다. 그래서 든 생각은 아니지만 그는 참 한결같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우는 지금 친구들과 놀고 있다. 친구들과 있을 때 연락하는 양과 질은 방금 생각한 한결같음의 예외인 것 같다. 그렇게 느끼는 건 내 주관적 인식의 문제인가 실제 객관적 사실의 문제인가. 

 다음 주에는 손쌤 뵙는 것 말고 친구 약속이 3개나 있다. 모두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뭔가 어영부영 노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이번 주처럼. (노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영부영이라는 게 문제) 손쌤께 보낼 메일을 쓰는 데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 잠깐 잊고 있었다. 나는 에너지가 부족하여 남들만큼 놀고 남들만큼 일하지 못한다는 걸 말이다. 잡시간을 줄여 중요한 것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뇌구조의 점처럼 매우 한편으로는 그런 생활방식이 (학창시절의) 날 더 약하게 만들진 않았나 싶기도 하다. 요새 생각하는 건 어느 상황에서든 미치도록 행복하거나 불행하지 않은 내 성격과, 어느 순간에는 날 믿고 내가 과거에 한 선택을 믿고 그저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다. 여전히 나는 한 발 한 발 산을 오르지 않고 지도만 들여다보고 있다. 그것도 도중에 하산한 후. 날 믿고 움직이자 생각하면서도 예전 그 때처럼 이게 내 생각이 짧아 잘못된 선택이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불쑥 불쑥 고개를 든다.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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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7. 21:50

인생은 사는 것이다. 무엇을 이루려는 게 아니라.
는 법륜스님의 말씀

그렇지, 행복은 과정에 있는 건데.
최근 맘먹은 것들: 1. 단박에 거절하지 않기 (싫어,됐어)
                         2. 카톡 바로 답하기
                         3. '이것만 끝나면' 하지 않기
Posted by duun

졸업식 단상

2012. 2. 27. 14:56

졸업을 하고 일년 반이 지나
같은 모습으로 학교 앞 횡단보도에 서 있을 거라곤
생각치 못했다.
졸업 후엔 내가 학교와는 동떨어진 사람이 될 것 같았으니까.

그러고 보면 2005년 이 자리에 있던 대학 새내기인 나와
2012년 지금의 내가
본질적으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생겼다고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과 2019년도 동일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건데,
2019년이라.. 서른셋이라..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반드시 올 서른셋이라는 시간에도
지금과 같은 본질을 갖고 살고 있을 생각을 하니
어쩐지 별로였다. 미래의 내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 생각은 즉, 지금의 내가 맘에 안 든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저 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발전이 없는 미래를 상상했기 때문에 슬펐던 걸까?

본질과 변화.
사람의 본질은 변할 수 있는 걸까?
늘 발전하는 나를 꿈꾸는 내가 좀 더 나아지고 싶은 부분이 나의 본질일까? (그렇다면 힘든데)
내가 바꾸고 싶어하는 나의 모습은 정확히 어떤 걸까? 그 모습은 나의 본질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리고
과연 서른셋의 나는 이 글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2019년에도 힘내라, 주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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