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 일기

2023. 6. 23. 20:39

-사날은 참 긴장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제가요? 저 긴장해요.

-물어보면 긴장된다고 하긴 하는데 먼저 드러내진 않고. 긴장하는 것 같지 않아 보여요.

-아, 그건 감정 마비 때문에 그래요.

 

같이 조금 웃다가

-원래 좀 덤덤한 편이긴 해요.

덧붙인다.

 

 

그렇지만 긴장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긴장해서 무대를 망쳐버렸던 적이 있거든요.

 

심장이 마구 뛸 때는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께를 지그시 눌러요.

그러고는 손바닥에 전해지는 심장 박동을 느껴요.

쿠궁 쿠궁 쿠궁 쿠궁

거기에 집중하다보면 서서히,

가라앉을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진 않아요.

그래도 그럴 때 대응하는 나만의 의식이 있다는 점에서

조금 안도하게 돼요.

 

그때는, 내가 망쳐버린 그때에는

손을 올려놓는 나만의 의식이 없었어요.

내가 긴장하는지도 몰랐어요 정말 아무렇지 않았거든요 아무런 생각도 없었어요 연습을 많이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같은 생각도 안 했어요 올라가기 직전에 공연 내용을 바꿨고 그래서 바꾼 부분에 대한 연습이 부족했다는 거는 아주 나중에서야 떠올렸어요 무대에 올랐을 때 사람이 많다, 같은 생각도 안 했어요 그냥 했고 맞지 않는 게 귀에 들렸고 그냥 멈추었을 뿐이에요

 

 

그러네. 나는 지금 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새롭게 해석하는 순간이다.

 

사실 긴장해서 망쳐버린 게 아니었다.

긴장해서 멈춘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게 망쳐버린 일이라는 걸 내려와서야 알았다.

그냥 몰랐을 뿐이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그건 실패를 뜻한다는 걸.

그저 모른 채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 일의 본질은 긴장이 아니라

내가 모른다는 걸 들킨 일

내가 실수한 걸 들킨 일

모두 앞에서 적나라하게 실패한 일

그것이다.

모두에게 들킨 낯 뜨거운 실패를 마주하는 일.

 

그래서 잊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실패를 조심스럽게 간직하니까.

상처를 끌어안은 채 회복할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아직도 드럼을 치다가 멈칫거리는 순간에

흡, 하고 놀라버린다.

이러면 안 돼. 절대로 안 되는 일이야.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건 나의 실패였어.

나는 실패할 수 있지.

 

 

처음으로

축축하게 묻혀있던 그 일에 햇볕을 쬐어주고

공기를 통하게 해주는 기분이다.

 

 

나, 긴장 안 하는 사람 맞나 봐.

덤덤한 사람 맞나 봐.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뛸 때는

긴장될 때가 아니라

화가 날 때도 아니라

무서울 때.

비난 받을 때, 실패가 드러날 때, 그리하여 나의 수치심이 나를 부를 때.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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