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동물원>
 ... 커트 보니것의 소설에 한 혹성의 인간에게 유괴되어 그 별의 동물원에 들어간 남자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라고 하지만 유리로 된 침실)에는 '지구인'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어서 그 별의 사람들이 모두 구경하러 온다. 그리고 우리에 파트너로 함께 넣어 준 것이 금발의 글래머 미인이다. 그래서는 아니지만, 한번 동물원 우리 속에 들어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르겠다고 나는 가끔 생각할 때가 있다. 당신은 어떤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지? 역시 내가 이상한 걸까.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 십대 후반 소년소녀의 연애에는 적당하게 바람이 빠진 듯한 느낌이 있다. 그들은 깊은 사정을 아직 모르니 현실에서는 투닥거리는 일도 있겠지만, 그만큼 모든 것들이 신선하고 감동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그런 날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영원히 잃어 버린 뒤라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러나 기억만큼은 신선하게 머물러 그것이 우리의 남은 (아프디 아픈 일이 많은) 인생을 꽤 유효하게 따뜻하게 해 줄 것이다.
 나는 줄곧 소설을 써 오고 있지만 글을 쓸 때도 그런 '감정의 기억'이란 몹시 소중하다. 설령 나이를 먹어도 그런 풋풋한 시원(始原)의 풍경을 가슴속에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몸속의 난로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과 같아서 그다지 춥지 않게 늙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이유로 귀중한 연료를 모아 두기 위해서라도 젊을 때 열심히 연애를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돈도 소중하고 일도 소중하지만, 진심으로 별을 바라보거나 기타 소리에 미친 듯이 끌려들거나 하는 시기란 인생에서 극히 잠깐밖에 없으며 그것은 아주 좋은 것이다. 방심해서 가스 끄는 것을 잊거나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일도 가끔이야 있겠지만 말이다.

<체중계>
 ... 나는 개인적으로 체중계라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까지 몇 개나 체중계를 소유하며 생활을 함께 해 왔다. 언제나 욕실 한 구석에서 말없이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데 가끔 한번씩 끌어내서 올라타고는, '으으.'니 '아아.'니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그대로 한쪽 구석에 밀어붙여 놓게 되는 체중계가 왠지 기특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지? 나는 체중계를 볼 때마다 '만약 내가 체중계였다면 대체 어떤 기분으로 일생을 보낼까.'하는 생각을 한다. 흠, 그렇다고 해서 체중계에게 내 쪽에서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는가 하면 특별히 그런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체중계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체중계란 것이 모두 귀여운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여자와 옷에 대해서 기호가 있듯이 체중계에 대해서도 나는 내 나름대로 약간의 기호가 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위에 올라서면 체중이 디지털 표시로 삐삐삐 나오는 최신의 것. 겉보기에도 스마트하고 숫자도 읽기 쉽지만 왠지 신뢰감을 가질 수 없다. 체중계의 블랙박스화라고나 할까, 기계 속에서 실제로 무엇인가가 행해지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이를테면 안에 악질 난쟁이가 들어앉어서 하품을 하며 '이 녀석은 좀 무거운 것 같으니까 72킬로그램으로 해 버리자.'하고 키보드에 적당한 숫자를 탁탁 쳐 넣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것에는 아주 의심이 많은 성격이다. ...



하루키의 에세이집.
하루키의 개인 신상에 대해 별로 궁금하지 않고 그의 일상생활에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책을 소장하고 싶을 정도의 마음까진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하루키는 이런 사람이군' 정도의 느낌이랄까

물론 소설가다운 신선한 사고방식은 흥미로웠다
그 중 맘에 드는 이야기들 몇 개.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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