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가 홍수처럼 넘치는 요새,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면 순식간에 대강의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일상적이 된 우리는 모든 것을 정열적으로 탐구하지 않는다고 할까, 아무 생각도 없고 호기심도 갖지 않는다고 할까, 또는 처음부터 갈 곳을 예상하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달까

그래서 요새는 '어설픈 전문가' 혹은 '사이비 전문가' 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궁금증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하지만 쉬운 만큼 가볍다. 깊지 않은 정보들로 호기심을 얕게 해결하고 더이상 궁금해하지 않는다. 인터넷 공간은 지식이 아닌 정보들로 가득하다. 진정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지식이 쌓여야 하는 거겠지. 하나에 집요하게 파고들지 않는 나를 이렇게 변명해도 될까???


-막스 베버: 살기 어려운 세계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발버둥 치면서 필사적으로 묻는 것이 젊음. 지에 대한 갈망.
그는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청춘을 얼마간 허무와 함께 보내고 그래도 의미를 묻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욕구에 시달렸다. '실존적 공허함' '허공에 걸려있는 청춘'
"해답이 없는 물음을 가지고 고민한다. 그것은 결국 젊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달관한 어른이라면 그런 일은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습니다."

해답이 보이지 않는 물음을 물을 수 밖에 없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해답이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허무할 수 밖에 없는 거겠지? 허무하고 어둡고 무기력하고 복잡해도 끝까지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거고. 청춘이 이런 거라고 말해줘서 고맙다. 남들은 모두 즐겁고 힘차고 신나보였던 그때, 나 혼자 어둡고 쓸쓸하고 외로워서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거라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때 무슨 고민을 그렇게 힘들게 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겠다(라는 말이 어찌 보면 그냥 모든 것을 긍정하는 척하며 싸잡아서 묻어두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마 그 시간의 고민들이 지금 해결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쩜 죽을 때까지 풀지 못하는 물음일 수도 있겠지. 궁극의 답에 도달하진 못해도 그를 향해 가겠다. 점점 가까워지기 위해 내 안에 차곡차곡 쌓겠다. 뭐를? 마음의 양식을. 


-인간이 일을 하는 이유: 타자로부터의 배려와 인정을 받기 위해. 자기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완전히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하는 정보 차원에서. 얼마 전 p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일의 발견'을 읽으면서. 배려와 인정, 사회에서의 내 존재 확인, 그렇게 중요한 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을 하고 있으면 알 수 있을까?


-부자유스럽기 때문에 잘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자유로워지면 잘 보이지 않는 것. 자유의 역설. 자기 의지와 반대되는 반려자를 무리하게 맞이하게 되면 역으로 정말로 자기가 끌리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무한한 자유라는 게 어떤 부분에선 맘에 들지 않는다. 언제나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제약이 때론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다는 건 내가 정말 이렇다는 것??????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사람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따라서 의미를 확신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은 절망에 빠지게 된다.

의미가 살아갈 힘이 된다는 것, 얼핏 봐선 이해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의미란 정말 중요한 요소라는 걸 안다. 의미가 있고 없고에 따라 한 사건의 중요도가 크게 달라진다. 의미있는 것을 하고 싶고, 내가 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고 싶다 나는. 아 얘기가 너무 추상적이야.  



-타자를 인정하는 것은 나를 굽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상대를 인정하고 나도 상대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다. 거기에서 얻은 힘으로 나는 내가 되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내가 비로소 내가 된다는 의미에 대해 확신할 수 있다. 자기의 의미를 확신한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 따라서 고민하는 것은 좋은 것이고 확신할 때까지 계속 고민하는 것이 좋다.

'상대에게 인정을 받아 비로소 나는 내가 된다는 의미를 확신한다', 위위위 얘기와 마찬가지로 크게 공감이 되진 않지만. 자신의 의미를 확신하면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는 건 맞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숨쉬며 살아가는 의미를 명확하게 알고 있고 느끼고 있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릴 수가 없다. 우울증이라는 건 자신을 비하하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오는 것이니까. 강상중씨가 말한다, 고민은 좋은 것이고 확신할 때까지 계속 고민하라고!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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