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2009. 5. 12. 00:40



그 사람의 여자친구는 전화를 받았을까
그래서 그 사람은 더이상 신촌거리를 헤매고 다니지 않았을까
그 사람은 정말 그 순간에 전화기를 붙들고 하소연 할 누구도 없었던 걸까 (한명도?)
나도 바람피워보려고요 라는 건 순간적인 감정 이었기를
살면서 누구한테 안 좋은 소리 한 번 안하고 살았을 것 같은 얼굴의
처음보는 그 사람은 안주머니에서 지하철 노선표를 꺼내 흔드며 "나 이런 사람이에요"라고 했다

그에게서 술냄새는 나지 않았다

어쩜 그 사람은 정말 지하철 노선표처럼 안전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내 집에 도착하게 되는

  아뇨 그 여자 나쁜 사람이에요
  제가 정신이 없어 보이나요?
  바가지를 박박 긁었어요 그래서 제가 가라고 해버렸어요 잘했죠?

여섯시반부터 아홉시까지 그녀에게 통화버튼을 누르며 서성댔을 그는
어느 누구라도 붙잡고 가슴을 털어놓고 싶었던 그는
어쩜 좋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휘청휘청 위태롭게 흔들리는 괴로운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어줄 수 있었겠다


그렇지만
만분의 일의 확률이더라도
내게 일어나면 그건 백프로가 되어버리니까

미안해요 험한 세상 내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거 이해하죠?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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