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일기

2023. 6. 9. 20:27

진로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아직도 진로 고민을 해?

누군가 나를 놀려대던 말이 웃겨서 기억해놓았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진로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서 진로심리학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필연. 때로 세상은 우연으로 가득차서 우연으로만 돌아가는 것 같지만

이렇게 가만 앉아서 생각하면 필연이 꽤 있다.

파트너가 테니스에 빠져서 나를 불만스럽게 만들 정도로 내게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줄은 (것이 아니라고 그는 항변하지만) 지금 이전에

내가 그에게 너를 드러내라고, 느껴지는 것을 느끼라고, 너의 선호와 취향과 호불호와 가치관을 나에게 꺼내달라고,

열과 성을 다해 그의 자아를 끌어낸 시간이 있다.

"나는 다 좋아요"에서 "싫어!"로 바뀐 것은 때로 몹시 아쉽지만.

그러므로 그가 좋아하는 것에 미쳐버린 건 "나는 다 좋아요"에서 "좋아!!!!!!!!!!!"가 된 것이고 이것은 필연.

"당신이 나를 안 만났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나의 단골 질문이다.

"아마 지금 이렇게 테니스를 치고 있진 않았겠죠."

 

나는 삶에 필연이 보석처럼 콕콕 박힌 게 좋다.

내가 나의 삶을 만들었다는 뜻 같아서. (통제욕 충족)

우연을 가져와서 우연에 반응하고 우연을 다루는 것도 물론 삶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영역이고

그래서 우연도 결국에는 필연의 영역으로 들어와버려서

우연과 필연이 구분할 수 없이 어지럽게 뒤섞인 게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진로 고민을 박터지게 했던 사람이라 진로심리학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내가 나를 알아준 것만 같아서 내심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국문학과를 간, 국문학을 사랑한 내 친구에게 느꼈던 것처럼.

스스로를 알아주고 스스로에게 맞는 선택을 내려주는 사람이라는 자긍심.

 

하지만 이런 선택이 내 삶에 많지는 않고

나보다 세상을 알아주는 선택을 해왔던 경험들 때문에

나는 나의 선택에 그리 자신이 없다.

내가 원하는 것과 세상이 원하는 것이 하도 끈끈하게 달라붙어있어

자꾸만 '하면 하겠지', '못할 건 없잖아'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미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만으로 그건 세상이 원하는, 그러니까 세상의 욕망을 욕망하는 선택이라는 뜻 아닐까?

세상의 욕망을 욕망할 수 있다.

세상의 욕망을 욕망하는 게 나의 욕망일 수 있다.

다만 그간 내 삶의 경험치로 쌓은 나라는 사람의 지도에 써진 하나의 특성,

나라는 사람은 세상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만으로는 잘 움직이지 않고 기능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게 뭘까?

평생 이 질문을 품고 살게 될 것 같다.

나라는 지도는 자주 수정이 필요하니까. 사월날씨처럼 변덕스럽게.

 

오늘 이 글을 시작한 이유는 지금 하고 있는 진로 고민을 쓰려던 건데

딴 얘기만 잔뜩 했다.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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