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로사 2층에 앉아 있으면 편안해진다. 그곳은 층고가 높고 까맣다. 까만 철제책상은 사시사철 냉랭해서 맨살로는 디딜 수 없는데 굳이 테이블을 철제로 만든 건 거기가 포스코 건물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일층에서 주문을 하고 이층으로 올라오면 정가운데에 스무 명쯤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있고 벽면의 통유리창을 따라 독립된 테이블이 정렬해있다. 벽면에 붙어있는 테이블은 4인용이지만 대부분 홀로 앉아 노트북을 앞에 두고 자리를 차지하는 중이다. 다들 오래 앉아 자기 작업을 하고 자리는 언제나 넉넉하고 직원은 일층에 있어 눈치 보일 일도 없다. 옆이나 앞의 사람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테이블마다 콘센트가 비치되어 있어 빈자리라도 생기면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 바람처럼 달려오는 인기 자리들. 그곳에 한번 앉으면 종일, 테이블 위에 컵 하나만 놓여있으면 나는 정당하게 이용하는 사람이 되어 마감 전까지라면 언제까지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존재다. 처음으로 한강을 따라 달린 날, 이 땅을 밟고 있다는 감각이 내가 이곳에 속해있다는 증거 같아 벅찼었다. 딛는 걸음마다 마치 땅따먹기처럼 영역을 넓혀 가는 기분, 이곳에 당당히 존재하고 있다는 기분. 그것이 절실히 필요했고 따라서 나는 고양되었다. 경기도로 이사한 후 사방이 공사 중인 흙먼지 이는 곳에서 밖으로 드나드는 버스 단 한 대에 의존하거나 남편의 스케줄에 종속되어야만 집을 나설 수 있는 고립감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지금이야 고립감과 무력감보다 왕복 만이천 원의 택시비가 낫겠다 판단하여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택시를 이용하지만 택시비를 낭비한다는 죄책감은 꽤 큰 것이어서 그리 마음먹기까지 고립감을 꽤 오래 견뎠다. 물리적인 거리의 이유만이 아니라 지금 일인분의 경제활동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이 사회에 소속되지 못했다고 여기는 감각에 일조한다. 이런 삶도 있고 이런 시기도 있겠지만 나는 자꾸 자리를 찾아 서성인다. 테라로사에서는 그것을 오천 원의 얼그레이 차 한 잔으로 살 수 있다. 아침 열 시부터 밤 아홉 시까지 그곳은 이 땅에서 나의 정당한 자리가 되어준다. 나는 마음 놓고 창밖을 바라본다.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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