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점심을 현대백화점에서 먹는다. 거기 지하에는 맛있는 것들이 많고 또 혼자 먹는 사람들이 많다. 다들 휴대폰을 앞에 세워놓고 먹는다. 조명은 고급스럽게 노오랗고 맛있는 것들이 보기 좋게 늘어서있는 곳. 깔끔하고 쾌적하다. 나는 주로 푸드코트를 이용한다. 그곳이야말로 아무 눈치 볼 게 없다. 요리하는 사람 앞에 앉아 밥 먹는 걸 불편해하는 나에게 최적의 장소. 더구나 코로나 때문에 칸막이를 쳐놓아서 프라이버시는 더욱 강화되었다. 나는 에어팟을 껴고 팟캐스트를 들으며 밥을 먹는다. 가격은 결코 싸지 않지만 만 원 아래로만 먹는 걸 내 나름의 규칙으로 삼았다. 그러면 이 근처에서는 선방이다. 오므라이스 팔천오백원, 까르보나라 구천원, 치즈 오븐 스파게티 구천오백원. 오늘 점심은 어디에서 먹을까 생각하다가 현대백화점을 떠올리고는 조금 흐뭇해지는 걸 느꼈다. 나, 현백을 좋아하나 봐? 그래서 현대백화점 주식을 한 주 샀다. 오늘 아침에 샀는데 벌써 칠백원이 떨어졌다. 근데 현백 좋아해도 되나? 요새는 자본이든 젠더든 암튼 뭔가 강력한 힘의 뭔가가 껴있으면 좀 불안하다. 마음놓고 좋아해도 되는지, 내가 모르는 뭔가 구린 게 언젠가 내 뒤통수를 칠 것만 같다. 그래서 한 발자국 떨어진 느낌으로 좋아할랑말랑 마음을 통제한다. 더욱 미지근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암튼 요새는 내가 뭘 좋아한다고 깨달으면 주식을 산다. 단순하고 초보적이다. 뭐든 재밌게 하고 싶어. 이렇게라도 관심 가지면 좋지. 그러고보면 현대백화점은 내가 좋아할 만한 곳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의 부자 큰이모가 제일 좋아하는 백화점. 이모는 롯데백화점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백화점이라고는 잠실 롯데만 가는 엄마를 코엑스 현백으로 매번 불러내는 이모다. 나의 취향을 가장 먼저 발견해준 사람도 이모였다. 이모가 하는 음식점에 가면 항상 내게만 고급 냅킨을 깔고 그 위에 수저를 올려주었다. 미리 세팅된 상에서 내 자리가 어딘지 언제나 알 수 있었다. 미리 준비해놓지 못한 날에는 어머 사날이는 이거 깔아줘야 돼 하며 요란스럽게 나를 특별대우 해주는 이모한테 나는 괜히 민망스러워 아, 아닌데, 하고 말끝을 흐리곤 했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하나? 근데 이모가 깔아주는 냅킨이 싫지 않았다. 유별난 사람이 되는 건 싫었지만 하얗고 두툼한 냅킨을 착 펴서 무릎에 올려놓고 식사하는 건 좋았다. 그러니까 내 취향이라는 건 뭐랄까 풍족한 귀족의 톤앤매너 같은 걸 동경하는 것이다. 화려하고 치렁치렁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날, 평소에도 늘 입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서양 중세시대 귀족풍의 복식을 좋아한다. 커다란 상에 촛불을 켜놓고 멀찍이 떨어져 앉아 개인 식기를 사용하며 우아하게 포크를 사용하는 걸 꿈꾸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위아래 세트로 파자마를 입고 나이트 가운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집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나보다. 집에서도 호텔처럼 커다란 배스 타올을 쓰고 손바닥만한 핸드 타올을 쓰나보다.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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