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죽으라 뛰어 도달해야 하는 결승점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원하는 것을 얻은 후에 느끼는 짧은 기쁨의 순간이 아니라, 바라는 것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과정에 행복이 있다는 걸 아는데, 아는데..! 

 그러니까 나는 대학원에 들어가는 것만이 행복이라 여길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과정에서 책을 읽고 논문을 보고 영어 공부하는 것을 지금 여기의 내 행복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아마 영어 공부를 하면서 행복을 느끼기는 좀 어렵겠지만). 지금 생각엔 대학원에 들어가기만 하면 행복이 나를 찾아와 짜잔 할 것 같지만, 대학원생이 된 나는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그걸 달성하기까지 행복을 유보할지도 모른다. 지금껏 수없이 그래 왔던 것처럼. 어쩌면 걱정과 불안의 종류만 바뀔 뿐, 나는 지금보다 덜 행복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내가 내 친구였으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너의 불안은 이해하지만, 지금의 자유를 마음껏 즐겨 봐.

 내면에 화가 많은 사람은 북을 치는 게 좋다고 어느 심리치료사가 말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드럼은 내게 안성맞춤인 악기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건 나는 어떤 '목표'를 위해 드럼을 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드럼을 치고 있는 순간이 내겐 행복이다. 가끔 메트로놈이 나를 덜 행복하게 하긴 하지만, 행복으로 향하는 모든 순간이 백 퍼센트 행복일 순 없으니 영어 공부 같은 것으로 이해해본다.



+) 행복 연구의 창시자인 Ed Diener와 아들 Robert Diener의 책, <Happiness>의 국내 번역본 제목은 <모나리자 미소의 법칙>이다. 디너 교수는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80퍼센트의 기쁨과 20퍼센트의 슬픔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룬 삶의 필요성을 설명한다,고 감수 서은국 교수가 말한다. 지금 나의 20퍼센트의 슬픔은 영어와 메트로놈과 불안이 맡고 있다고 적용시킬, 순 없겠지만 그렇게라도 설명하고 싶다, 지금 내 마음을.

++) 디너 교수가 어느 정도의 부정적 감정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영어 공부하기 싫다 같은 것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정서적 경험들이 인생에 있어 불가피하고 무엇보다 유용한 가치가 있다는 얘기이다. 두려움은 위험을 피하게 해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죄책감은 우리가 도덕적인 판단을 하도록 안내한다. 부정적 감정은 우리의 생존과 사회적 기능에 유익하다.

+++) 그러니까 몸이나 마음이 힘든 상황에서 아픔을 느끼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아픈데 아픔을 느끼지 않으면 우리는 상처를 치료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아프고 소리 지르고 그리고 천천히 치료하자.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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