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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Let your life speak)     -파커 J. 파머 지음, 홍윤주 옮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뭔가 지금의 자기 모습보다 더 훌륭하고 자신을 초월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상을 그리고 있었다. 소명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자아에 대한 깊은 불신에서 시작된다.'

'나는 늘 내 인생을 잘 꾸려 나가기에는 부족한 존재라는 느낌을 가졌다. 내게 기대되는 이상적인 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의 차이 때문에 죄의식을 만들어 내면서 그 격차를 좁히기 위해 몸부림치느라 지쳐갔다.'

'건축기사가 철, 나무, 돌 같은 재료의 본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단순히 보기 싫은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리나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형광펜 치며 읽은 부분
앞쪽은 형광펜까지 치며 감명깊게 보다가
점점 뒤쪽으로 갈수록 이게 뭔말이야 하며 문장을 곱씹어보기도 하고
잠깐 읽기를 멈추고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며 읽었다
그래서인가 학교 오가며 지하철에서 간간히 봐서인가
뒤쪽엔 딱히 마음에 와닿는 얘기가 별로 없었다
인생의 계절 정도?

그래도 건축기사 얘기를 읽은 것만으로도
나에게 있어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우선 책에 대해 전체적으로 얘길 하자면
너무 기독교적인 입장이랄까
물론 소명에 대한 중심적인 의미와 생각에는 공감하지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 세상에서 어떤 소명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어떤 재능과 한계를 갖고 있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자아와 본성을 따르는 건지
가 신에 의해 정해져있고
나는 그 길을 찾아 원래 나에 대한 신의 의도에 따라 사는 게
가장 행복하고 올바른 길이다 라고 말하는 걸 보며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참 좋아하는
신실한 기독교 신자인 친구의 미니홈피에 있던 글이 생각났다

아 큰 거부감이 들었단 얘긴 아니다
분명 우리에겐 재능과 한계가 존재하고 자아와 본성 또한 마찬가지니
그 뒤에 신이란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철인지 나무인지 돌인지를 아는 것
철이 나무가 되고 싶어도 불가능하며
나무가 돌이 되려고 하면 불행할 것이고
돌이 철의 자리에 있으면 건물 전체가 힘들다

내가 도대체 철인지 나무인지
내가 혹시 나무라도 돌이 되고 싶으면 될 수 있는건지
근래에 나에게 가장 중요했고 또 수많은 고뇌를 가져다주었던 문제에 대한 답이었다
아니 모든 의문에 대한 완전한 답은 아니지만 반쯤은 깨달았다

재능과 한계, 자아와 본성을 찾아내어
그에 따른 소명
즉, 이 세상에서 나에게 꼭 맞는 그 자리
로 가는 것이 행복이다
내 자신을 모두 뒤집어 엎어야 하는 소명 따위 있을 수 없다

파울로 코엘료는 말했다 '꿈을 좇는 과정엔 마음의 고통이 없다'고
여기서의 꿈을 소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을 당시
나에겐 꿈도 자아의 신화도 없었다
그저 간절히 찾을 수 있기를 바랐을 뿐

그런데 지금 난 처음으로 가슴을 뛰게 하는
그 일을 위해 험한 길이라도 헤쳐나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그런 일을 찾았지만

그게 나의 재능과 본성에 맞는 일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나의 자리가 아닌 곳을 바라보며
이상적인 모습의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격차를 좁히려 무진 애를 쓰다가
결국 철의 자리에 들어간 나무처럼 나자빠지게 되는 건 아닐까

그걸 알기 위해선 어쩌면 해보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내 앞에서 그 길의 문이 열리는지 내 뒤에서 문이 닫히는지
부딪혀 보는 수밖에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연금술사를 읽었을 대학교 일학년 스무살 땐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내 자아를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그건 파커의 말처럼
외적 활동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내적 여행을 떠나야 하는 걸 거다
우울증에 걸렸을 때라야 비로소 진지하게 할 수 있었던 파커의 경우처럼
길고 어둡고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도
나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 물어야 한다
네가 원하는 게 뭐니

답이 쉽게 나올 것 같지

생각해보면 내 생애 가장 우울하고 어둡고 괴로웠던 날들은
고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였다
앞으로 뭘 할지 어떤 길을 가야할지 답답하고 막막했던 그 때
고시라는 갈 길이 정해졌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공부가 어려워서는 아니었다 난 시작도 하지 않았었으니까

그 길은
모두가 추천하는 길이었고 인정하는 길이었고 고개 끄덕여주는 길이었다
모두가 날 응원해주었고 너에게 맞는 올바른 길로 가는 거라 했다

그런데 바로 그 길에서 나는 우울증 비슷한 게 왔고
'모든 게 허무하다'라는 일기만 써갈기며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물론 죽고 싶었던 건 아니고 사는 의미, 이유가 눈 씻고 찾을래도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그 땐 그게 고시 결심과 관련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또 내가 파커처럼 내적 여행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결국 난 고시 결심을 철회했고
지금 생각해보니
내 마음의 소리와 다른 길을 택한 것에 대한 또 다른 마음의 소리가 아니었나 싶다

마음도 말을 한다
귀 기울이면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보다 억배는 더 어렵다
그래서 방치되는 우리 마음이 제발 날 좀 봐달라고 소리치는 게
우울증일지도 모른다
우울한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좀 더 내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보내는 마음의 경고 신호일 수 있다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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