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나는 꽤 오랫동안 식욕을 잃었다. 원래도 식욕이 왕성한 편은 아니지만 유난히 밥이 안 넘어가고 입이 까슬까슬한 기분이었다. 그 좋아하던 집밥을 배고픔에 억지로 밀어넣곤 했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속이 더부룩한 그런 시절이었다.

 게다가 잠을 자고 나도 개운치가 않았다. 어느 날은 피곤에 겨워 밤 11시에 쓰러져 자고, 또 어느 날은 내 인생 어디로 가는 건가 오늘 자는 의미도 내일 일어나는 의미도 아 내게는 의미없다 하며 끝없는 자학과 비관으로(이러면서 하는 일은 대부분 드라마 보기) 새벽 4시에 자기도 했지만, 일어나는 시간은 언제나 같았다. 아침 8시 20분(±10분). 지금 와 생각하면 엄마가 나가시기 전에 아침밥을 얻어 먹으려는 본능(!)과 나 백수라고 퍼져 지내는 거 아니야 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무의식의 작용이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언제 자도 같은 시간에 벌떡 일어나는 기현상을 겪으며 동시에 언제 자든 가뿐히 일어나는 법이 없었고 아침밥 먹고 혼자 있는 집에서 또다시 무거운 낮잠으로 오전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때는 자도자도 머리가 아팠고 그럴수록 나는 더욱 침대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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