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에 관계없이 누군가의 진심을 담은 욕구 표출은 마음에 와 닿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역시 진심의 힘이 강한 것일까. 말의 형식은 단순하고 담백할수록 좋다. 요란한 미사여구나 완곡한 표현 없이 상대의 '날것의 마음'을 듣게 되면 일순간 멍- 해지고 그 말은 내 심장에 콕 박힌다.

 지금껏 내게 와 박힌 날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엄마의 "나는 지금까지 너희들한테 친구 같았다고 생각했는데." 일상의 고민이나 순간의 생각, 느낌 등을 필터 조금 덜 거치고 스스럼없이 얘기해도 나의 본질에 대해 쉽게 평가절하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가장 편한 친구 같은 엄마도 엄마 나름의 노력이 있었던 거다. 엄마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왔는데 엄마가 당신이 추구하는 엄마상을 위해 애써왔구나 싶었다. 처음으로 엄마라는 '사람'의 맨얼굴을 대한 기분이었다. 그 후로 나는 전보다 더 엄마를 친구로 생각하려고 한다. 나도 엄마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관계가 친구 사이라고 생각한다. 뭔지 모를 책임 의식을 갖게 되는 선배 자리도 부담스럽고 '공손 의식'을 가져야 할 것 같은 후배 자리도 불편하다. 영화 <...ing>의 민아처럼 나도 엄마를 "명자"라고 불러보고 싶다. 그럼 우리 관계가 한 단계 탈바꿈될지도.

 다음 날것은 연인의 "난 어디서든 당신과 손잡고 다정하게 있고 싶어요." 동아리 멤버에서 애인으로 그가 위치 변경한 지 얼마 안 된 동아리 모임 날, 난 공적인 자리에서 그와 사적인 관계로 함께 있는 게 영 적응이 안 됐다. 아직 둘만의 관계도 온전히 편치 않은데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커플'이라는 시선을 받고 있는 게 너무 어색하고 민망했다. 그때 내가 택한 (멍청한) 방법은 옆자리의 그를 등지고 앉아 동아리 멤버 역할에만 충실하기. 여느 때와 다름없으려고 (어쩔 수 없이 그를 의식하지만) 노력하면서 회의하고 사람들하고 얘기한 후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틈에 그에게 슬며시 다가가 미안해하니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저 말을 하는 것이다. 분명하고 심플한 욕구 표현에 그의 '다정'은 날 무장 해제시켰다. 그 이후론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그를 혼자 내버려 두는 일은 없다(혼자 '있는' 것 말고). 당장 저 날의 모임에서부터 난 바뀌었으니 역시 날것의 진심은 강하달까.

 상대의 맨얼굴을 대하면 나도 모르게 무장 해제되고 어찌 보면 별것 아닌 말이 날 변화시킨다. 상대에게 거절당하지 않으려고, 나를 더 (멋)있어 보이게 하려고 날것을 요리/조리하는 데 익숙한 내게 이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내 마음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투명하게 표현하는 일이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좋은 방법이겠다는 단순한 결론을 얻는다. 가끔은 포장지를 걷어내고 투명하고 담백하게 나를 표현해보면 어떨까, "나는 당신과 이것을 하고 싶어요."라고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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