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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17. 22:02

하고 싶은 말을 내뱉지 못하니 가슴 속에 화가 쌓인다. 여러 개의 사회적 역할이 주어지고 모든 걸 잘 하고 싶은 맘에 너무 혼란스러운 상태. 학교엔 오래 안 있어도 자기 할 일 잘 하고 다른 사람들 잘 챙기는 똑똑한 제자이고 싶고, 배려심 깊은 동료이고 싶고, 생각이 깊고 어른스러운 인생 선배이고 싶고, 같이 있으면 즐거운 친구이고 싶어 한다. 대인관계의 다양한 역할에서 모두 최상을 탐내고 있다. 실상 현재의 나는 대인관계에 아무런 신경도 쓸 수 없는 물리적, 심리적 소진 상태인데 말이다. 어떤 상황에 특정 역할로 어떤 말이 어울릴지를 몰라 한두마디 뱉다가 그만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렇게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니 나는 저것들 중 어떤 역할도 제대로 못 하고 내가 나를 잃어버린다. 에너지가 없으니 날 표현할 말을 찾고 전달하는 것도 힘에 부친다. 사회적 상황에서의 내 모습이 맘에 안 드니 더욱 에너지가 빠진다. 지금은 하고픈 말을 못 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내 안의 기준이 흐물흐물해져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판단이 불가능하다. 기준이 외부에, 타인에게 가 있으니 이 말에 흔들, 저 말에 흔들. 가을날 하늘공원의 억새처럼 이리저리 휘둘릴 뿐 결국 어떤 것도 내 안에 와 닿지 않는다. 속이 텅 비어 있으니 나는 자꾸만 초라해지고 조급해진다.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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