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통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정도로만(!) 벌레를 무서워하는데, 요 며칠 방 안에 쌀벌레라고 하는 것들이 몇몇 앉아 있다. 명칭이 쌀벌레인 거 같진 않고, 날아다니는 건데 엄마 말로는 쌀에서 나오는 벌레란다. 벌레라면 대부분을 무서워하는 내가 신기하게 이 녀석들은 무섭지가 않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가만히 앉아 있어서인 거 같다. 별일 없으면 거의 온종일, 보통 몇 시간씩 한 곳에 그냥 앉아 있다. 그리고 요 벌레들을 보며 생각한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도 되는 거구나. 저렇게 살아남는 생명체도 있구나. 한 곳에 오래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 희미한 위안을 얻는다.


2. 벌레 하니 생각나는데, 여름밤 방 안에 환하게 불을 켜고 창문을 열어 놓으면 가끔 곤충이 들어 온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처럼(!) 나는 꺅꺅거리며 방을 탈출하고, 그 노무 곤충은 내 방에 가둔다. 상대적으로 나는 내 방 밖에 갇히는 것이지만. 지난번엔 벌레(나한텐 다 벌레) 잡아 줄 부모님이 이미 주무셔서 내 방에 못 들어가고 결국 빈 오빠 방에 가서 잔 적도 있다. 며칠 전에도 크고 이상하게 생긴 벌레가 들어와 형광등 주변에서 지직대서 아빠가 잡아 준 적이 있다. "저거 벌레 아니야, 곤충이야. 괜찮아." 아빠가 달래도 거실에서 앙앙대니 "원래 밖에다 풀어줘야 하는데 주연이가 너무 무서워하니까, "라며 놈을 잡아서 나오는 아빠 표정이 진짜 안쓰럽다는 표정이어서 나도 모르게 그 곤충 녀석이 불쌍해졌다. '왜 하필 내 방에 들어와서는...', '지금이라도 밖에 풀어줄까'. 방금 전까지 지구의 악마라도 되는 것처럼 도망치고 손가락질하고 소리 지르다가 말이다.

난 너무 동화가 잘 되는 사람인가.
잘 먹다가도 같이 먹는 사람의 '맛없다' 한 마디에 입맛이 뚝 떨어지고, 엄마가 맛있다고 듬뿍씩 집으면 평소 안 좋아하던 것도 마구 먹는다.


3. 사실 다른 거 쓰려던 건데, 어쩌다 보니 '벌레 단상'.

4. 게다가 벌레 얘기에 이어서 먹는 얘기를 쓰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ㅜㅜ)

5. 내가 일시적으로 동화 잘 되는 부분이 또 생각났다. 그 당시에 보는 드라마 인물들의 말투!
요새 부산 배경의 '응답하라 1997'을 보고 있어서인지 '-ㄴ데' (하는데, 하는 건데, 나는데, 인데...)를 많이 쓰는 것 같다. 지금 글 쓰면서 의식한 부분. 그게 부산 사투리와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Posted by d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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